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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노트(Bluenote)에 쓰여지는 사진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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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화집 22

처형2 /신대철

* 처형 2 - 신대철 1 사람이 미치겠네. 산이 울면 사람이 죽는다지? 산 우는 소릴 들은 자도 죽는다지? 무서워, 저 소리, 안 들리다니? 아무도 받지 않아 산속을 떠돌잖아? 날 부르는 거지? 미친 사람이지? 2 문득 잠드는 산, 눈발이 날린다, 사람이 보고 싶다. 다시다시 산을 몇바퀴 돌아야 한다. 오늘 걸어갈 길이 거친 눈발 속에 묻힌다. 나무, 나무, 새, 굴뚝새가 난다. 갈수록 불빛은 멀고 산속은 0시, 나는 밤 2시 그리고 손목시계는 밤 1시를 가리킨다. 모든 시간을 벗어나려면 오늘 몇 시에 맞춰 살아야 할까? 1시? 0시? 결국 밤 2시? 눈발이 점점 더 굵어진다. . . 용인

시화집 2016.03.21

처형1 /신대철

처형 1 신대철 1 홀로 가는 해사람을 산속에 남겨둔 채홀로 가는 물, 달, 안개 어머니, 제 집은?저는 혼자서도 모여 있지 못합니다. 제가 어머니 집이라면어머니, 아주 집을 뜨신 어머니, 저는 산속에 갇혀 殺氣 감추는 법이나 익히며 될수록 될수록 사람을 피하고 산짐승들이나 길들일까요? 아니, 덫이 될까요? 저를, 어머닐 잡는 덫 새를 잡았습니다, 날려주고새를 잡았습니다, 날려주고 2 물소리는 뚝 끊어졌다 내 실핏줄과 이어지고, 찬바람, 불빛에 묻어나온 낮은 목소리들에 이끌려 다시 산을 넘었다.친구여, 내 괴롭지 않을 때 찾아와야 하느냐? 뻑뻑해지는눈, 엊그제는 하루 끝 침묵 끝까지 흘렀다. 바닷가를 끼고흘러도 이젠 산에 둘러싸인다. 나를 몇 번 넘겨야 스스로 산속에 들 수 있을까? 네가 잠든 집은 집 ..

시화집 2016.03.21

노을 /기형도

노 을 / 기 형 도 하루종일 지친 몸으로만 떠돌다가땅에 떨어져 죽지 못한 햇빛들은 줄지어 어디로 가는 걸까웅성웅성 가장 근심스런 색깔로 西行하며이미 어둠이 깔리는 燒却場으로 몰려들어몇 점 폐휴지로 타들어가는 오후 6시의 참혹한 刑量단 한번 후회도 용서하지 않는 무서운 시간바람은 긴 채찍을 휘둘러살아서 빛나는 온갖 象徵을 몰아내고 있다.도시는 곧 활자들이 일제히 빠져 달아나속도 없이 페이지를 펄럭이는 텅 빈 한 권 책이 되리라.승부를 알 수 없는 하루와의 싸움에서우리는 패배했을까. 오늘도 물어보는 사소한 물음은그러나 우리의 일생을 텅텅 흔드는 것.오후 6시의 소각장 위로 말없이검은 연기가 우산처럼 펼쳐지고이젠 우리들의 차례였다.두렵지 않은가.밤이면 그림자를 빼앗겨 누구나 아득한 혼자였다.문득 거리를 빠르..

시화집 2014.08.14

풀 / 김수영

풀/ 김 수 영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시화집 2014.07.08

어느날 고궁을 나오면서 /김수현

어느날 고궁을 나오면서 /김수영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50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옹졸하게 욕을 하고한번 정정당당하게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파병에 반대하는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20원을 받으러 세 번씩 네 번씩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옹졸한 나의 전통은 유구하고 이제 내 앞에 정서(情緖)로가로놓여 있다이를테면 이런 일이 있었다부산에 포로수용소의 제14야전병원에 있을 때정보원이 너스들과 스펀지를 만들고 거즈를개키고 있는 나를 보고 포로경찰이 되지 않는다고남자가 뭐 이런 일을 하고 있느냐고 놀린 일이 있었다너스들 옆에서 지금도 내가 반항하고 있는 것은 이..

시화집 2014.06.18

입속의 검은 잎 /기형도

입속의 겁은 잎 /기형도 택시운전사는 어두운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어이따금 고함을 친다, 그때마다 새들이 날아간다이곳은 처음 지나는 벌판과 황혼,나는 한번도 만난 적 없는 그를 생각한다 그 일이 터졌을때 나는 먼 지방에 있었다먼지의 방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문을 열면 벌판에는 안개가 자욱했다그해 여름 땅바닥은 책과 검은 잎들을 질질 끌고 다녔다접힌 옷가지를 펼칠 때마다 흰 연기가 튀어나왔다침묵은 하인에게 어울린다고 그는 썼다나는 그의 얼굴을 한번 본 적이 있다신문에서였는데 고개를 조금 숙이고 있었ㄷ그리고 그 일이 터졌다, 얼마 후 그가 죽었다 그의 장례식은 거센 비바람으로 온통 번들거렸다죽은 그를 실은 차는 참을 수 없이 느릿느릿 나아갔다사람들은 장례식 행렬에 악착같이 매달렸고백색의 차량 가득 검은 잎들은 ..

시화집 2014.05.04

살아남은 자들이 있어야 할 곳 - 김남주

- 살아님은 자들이 있어야 할 곳 /김남주 (꽃속에 피가 흐른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란 자가외적의 앞잡이이고수천 동포의 학살자일 때살아남은 사람들이 있어야 할 곳그곳은 어디인가전선이다 감옥이다 무덤이다도대체동포의 살해 앞에서 저항하지 않고누가 있어 한낮의 태양 아래서 자유로울 수 있단 말인가누가 있어 한밤의 잠자리에서 편할 수 있단 말인가 동지여제국주의에 반대하여 싸우지 않고압제와 착취에 시달리는 민중들을 옹호하여무기를 들지 않는다면혁명의 새벽을 어디서 찾을 것인가

시화집 2014.04.27

노을 - 기형도

세월호의 참사를 지켜보며 희생자의 명복을 빕니다. 노 을 - 奇亨度 하루종일 지친 몸으로만 떠돌다가땅에 떨어져 죽지 못한햇빛들은 줄지어 어디로 가는 걸까웅성웅성 가장 근심스런 색깔로 西行하며이미 어둠이 깔리는 燒却場으로 몰려들어몇 점 폐휴지로 타들어가는 午後 6時의 참혹한 刑量단 한번 후회도 용서하지 않는 무서운 時間바람은 긴 채찍을 휘둘러살아서 빛나는 온갖 象徵을 몰아내고 있다.都市는 곧 活字들이 일제히 빠져 달아나速度없이 페이지를 펄럭이는 텅 빈 한 권 冊이 되리라.勝負를 알 수 없는 하루와의 싸움에서우리는 패배했을까. 오늘도 물어보는 사소한 물음은그러나 우리의 일생을 텅텅 흔드는 것.午後 6時의 소각장 위로 말없이검은 연기가 우산처럼 펼쳐지고이젠 우리들의 차례였다.두렵지 않은가.밤이면 그림자를 빼앗..

시화집 2014.04.23

새는 날아가지 않는다 /김명리

구름 사이로 희미한 한 자락 햇빛이어린 새의 앞날을 이끌었을까유월의 저무는 숲이돌연 화농의 새소리로 술렁거리고산그늘 스치는 새 날개 끝자락이교목의 잎새마냥 빳빳해진다더없이 따뜻한,더없이 보드라운,죽은 새끼의 날개털 여태 휘날리는텅 빈 둥지 위 노래기 같은 허공을새들은 겨냥한다 미친 듯 선회한다마파람에 불려 문상 온 새떼들까악까악 함께 우짖는다 슬픔을 통해넘어서야 할 禁線이 어디에 있는지찢겨나간 듬성한 날개털 속으로주사 바늘 같은 빗방울 내리 꽂힌다 (김명리/불멸의 샘이 여기있다 중) ** 김명리 시인의 시집을 구하려 이곳 저곳 헤메이다. 그나마 4집 3쇄 증쇄본을 손에 넣었다. 한번, 눈으로 느껴지는 직관적 이해가 어려운 시작들로 구성된 시집이라고 생각하고, 두번, 세번 읽으면서 전해오는 전율들이 치명적..

시화집 2014.0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