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 / 김수영 풀/ 김 수 영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시화집 2014.07.08
빈자일기/강은교 빈자 일기 모든 존재는 홀로 사라질 수 없다. 함께 연락함으로써 비로소 존재는 이루어지고, 드디어 깊이 사라진다.- 구걸하는 한 여자를 위한 노래 우리는 언제나 거기서 머리를 조아리고 있었다. 혀와 혀를 불붙게 하며 눈물로 빛과 빛을 싸우게 하며 다정한 고름 고름 속에 오래 서 있은 허리를 무너지게 하며, 황사 날아가는 무덤 가장자리에서. 그곳 천정은 불 붙은 태양이었고 바닥은 썩은 이빨의 늪이었다. 강은교/봄무사중 시화집 2013.1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