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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집/THEME

터 그리고 숨 (김포 애기봉)

하얀묶음 2015. 10. 11. 18:45


PROLOGUE  



 [외곽선 100번 도로 중의 상계동근처]

 일기예보를 검색해 보았는데, 하루 종일 '비'소식이 전해졌다. Captain 의 주장에 따라 비가와도 프로젝트는 계속간다 라는 카톡 메시지의 부담이 한층 버거웠다.

구리 휴계소에 도착한것은 약속시간 6:30보다 10분 전인데 프로젝트 멤버는 보이지 않는다.

정시가 되어서  캡틴에게 연락을 넣어보니, 곧 도착이란다. 

약속시간보다 10여분 뒤에 도착한 캡틴이 다른 멤버의 도착을 물어 보는데, 오늘은 단둘의 일정이라 말하고 출발한다.


캡틴과의 단둘의 여정은 처음이기도 하다. 

종일 비가 온다고 했는데 외곽선 도로위의 하늘은 장관이다. 비구름 몰려가고 난 다음에 해가 비추인다. 

잘하면, 오늘 날씨가 괜찮을것 이라는 기대를 해보며 출발했던곳이다. 

도로변에 차를 세워 놓고 비구름 사이를 비집고 나타나는 해를 담아 본다.




 

 


 여정, 

 구리 출발 -> 외곽도로(100번 도로) -> 김포 IC -> 김포한강로 -> 48번국도 -> 양촌읍 -> 대곶면 -> 월곶면 -> 성동리 -> 보구곶리 -> 조강리 -> 애기봉



 김포한강로

 










 서부전선과 가까워 지는 강변에는 철조망으로 드리워져 있다. 

강너머 도시는 오늘도 잠깨며 기지개 키지만, 철책은 숨죽이며 도시를 지키고 있다. 

한강은 그렇게 감금되어 있었다. 



 










 포구에는 작은 공간이 있었다. 

고깃배가 나가려면 이미 등록되어 있어야 하고, 정해진 시간에 배를 몰고 나가 고기를 잡을 수 있는 그런 포구다. 

포구 이름은 기억이 없다. ?? 

때 이른 시간이라 수산식당은 아직 문을 열지 않았고, 하늘의 빈 만국기만 펄럭인다.





[오늘은 외출이다]

주말이 되면 몇발자욱 옮기면 사람들이 숨쉬고, 생활하는 공간이다. 

대치되고 있는 긴장감, 압박감에서 가끔은 하루라도 이리 주민들이 있는곳으로 나와 민간인의 꿈을 꿔 본다.




[귀대]

아마도 휴가가 끝났을까 ? 

이제 부대로 귀가하는 발걸음이 가볍지만은 않아 보인다.




[가뭄의 성동리 저수지]

올 가뭄은 극심하다. 아직까지도 가뭄이 된다면 겨울가뭄까지 갈것이고 내년 여름도 가뭄이 될 확률이 높다고 한다. 

이 못에 가득채워진 물이 그나마 대치하고 있는 성동리 주민들에게 풍요로움을 줄 수 있을텐데 하는 아쉬움을 갖는다













철책을 경계로 하여 한쪽은 긴장감이 흐르고, 다른 한쪽은 평화로운 가을이 익어간다.

 




김포 문수산성 (金浦 文殊山城) 사적 제139호 김포시 월곶면 성동리, 포내리 일원 1694년(숙종 20년)에 축성된 문수산성은 강화 갑곶진(甲串鎭)과 더불어 강화해협을 지키는 요새다. 명칭은 신라 혜공왕 때 정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산성은 1964년 8월 29일 사적 제139호로 지정되었다. 면적은 20만 3511㎡이고, 둘레는 약 2.4km이다. 1694년(숙종 20) 구축한 것으로 병인양요 때에 치열한 격전지중에 하나였다.


1866년(고종 3)에 병인양요가 일어나 프랑스함대가 강화성을 함락시켰다. 그리고 서울로 진격하는 길을 확보하려고 육전대를 투입해 문수산성을 공격해 왔다. 그러나 김포출신의 한성근이 이끄는 수비군에게 격퇴를 당하였다.

1871년에 신미양요가 일어나 미국함대가 염하를 거슬러 올라와 광성진전투(廣城津戰鬪)가 벌어졌다. 그런데 강화 쪽의 광성보(廣城堡)·덕진진(德津鎭)과 함께 이곳 덕포진(德浦鎭 : 지금의 대곶면)에서 일제히 포격을 가해 그들을 격퇴시켰다.


그 뒤 미국함대는 인천방면으로 후퇴해 전열을 가다듬은 뒤 다시 북상해 해병대가 초지진(草芝鎭) 등을 함락시켰다. 이 두 양요를 겪은 뒤 1874년에는 덕포진에 안항동포대(鴈行洞砲臺)를 축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