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상 기 (1949 ~ 1988)
쪽빛 바다도, 검은 모래 해변서 뜨는 해도, 그가 자랐던 갈색 나무대문 집도, 그대로다. 그러나 화가는 이미 26년 전 세상을 떴고, 그림만 전설로 남았다. 살아 있었다면 65세. 영원히 30대에 머물러 있는 그를 잊지 못해 늙어가는 지인들이 고향 여수에서 전시를 꾸렸다. 생전에도 없었던 첫 귀향전이다. 전남 여수 GS칼텍스 예울마루에서 ‘고통과 절망을 끌어안은 영혼-손상기 25주기’전(지난해 12월 27일부터)이 열리고 있다. 유화·드로잉 등 모두 127점이 걸렸고, 아내 김분옥 씨가 작업실을 재현했다. 화가가 단 한 번도 화폭에 담아본 적 없는 짙푸른 바다 물결이, 도미니크 페로가 설계한 이 전시장 바로 앞에서 속절없이 출렁인다.
손상기(1949~88)는 세 살 무렵 척추만곡증을 앓았다. 서른아홉에 타계하기까지 ‘한국의 로트레크’라 불리며 힘겨운 생활을 쓰고 그렸다. 사고로 자라지 못해 단신이었던 툴루즈-로트레크(1864∼1901)는 19세기 말 카바레·뮤직홀·사창가 등 파리 밤문화의 초상을 근거리에서 포착한 화가다.
손상기를 일찌감치 알아본 것은 선배 화가들. 손씨의 작품을 관리하는 샘터화랑 엄중구 대표는 “김기창·권옥연·전혁림 등 원로 작가들이 앞다퉈 작품을 사갔다”고 말했다.
통영의 짙푸른 바다를 그림에 담았던 전혁림(1916∼2010)은 “시커먼 그림이 빛을 발하고 있소! 세계적으로 드문 그림이오”라며 흥분했고,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개관전 대표작가였던 화가 윤형근(1928∼2007)은 “음악은 슬퍼야 되고 미술은 소박해야 되는데 박수근 이후 가장 소박한 작가가 손상기”라고 평했다. 글과 그림에 두루 능했고, 신표현주의라는 당대 국제 미술계 흐름과 맥을 같이 하며, 리얼리티 충만한 작품을 내놓았던 손상기는 비극적 삶의 조건이라는 개인사까지 갖추고 있어 사후에도 여러 차례 재조명됐다. 2008년 국립현대미술관 20주기전, 2001년 예술의전당 13주기전이 대표적이다.
화가가 남긴 그림은 또한 우리가 지나온 삶의 궤적이다. 몸집보다 큰 봇짐을 머리에 인 어머니와 그 옷자락을 잡아끄는 판자촌 아이가 애처로운 ‘나의 어머니’가 대표적이다. 이 어두운 그림에 화가는 이렇게 적었다. “무겁고 무겁다/인생 삶/짐이 무겁고 아이가 무겁고 마음이 무겁고/무거운 것/ 고달픈 것/그들을 도우소서.”
손상기는 79년 상경해 아현동 굴레방 다리 옆에 사글셋방을 얻고 화실을 운영하며 지냈다. 곳곳이 개발중인 ‘공작도시’ 서울을 화폭에 담으며 “장애물이 많은 도시/나에게 서울은 벅차다/육교, 지하도, 넓은 건널목 그리고 소음/한겨울에 에이는 추위/밀리는 사람들의 표정 없는 얼굴들 모두가……”라고 썼다. 밑동이 잘린 ‘자라지 않는 나무’, 허리가 꺾인 채 화병에서 말라가는 ‘시들지 않는 꽃’ 등의 자전적 그림들 또한 수 십년 지난 지금까지 관객을 울리는 ‘절창’으로 꼽힌다.
이렇다할 전시 공간이 없던 여수에 엑스포를 계기로 대형 전시공간이 들어서면서 손상기에 대한 재조명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전시를 계기로 여수시는 손상기기념사업회, 샘터화랑 등과 함께 손상기 기념관 설립을 논의 중이다. 전시는 26일까지. 061-808-7036.
여수=권근영 기자
◆손상기=전남 여수 출생. 세 살 무렵 척추만곡증으로 장애인이 됐다. 여수 제일중학교와 상업고등학교 졸업 후 원광대 회화과를 나왔다. 대학 시절인 1977년 전북미술전람회 특선을 차지했고, 상경 후 81년 한국현대미술대상전 동상, 중앙미술대전에 입선했다. 85년 폐울혈성 심부전증 진단을 받은 뒤 입·퇴원을 반복하다 88년 부인과 두 딸을 남기고 세상을 떴다. 39세.
[출처: 중앙일보 2014.01.21] 절망의 빛을 그린 손상기, 여수 밤바다로 돌아가다
< 약 력 >
1949 1952 (3) 1972 (23) 1973 (24) 1975 (26) 1977 (28) 1978 (29) 1979 (30) 1981 (32) 1982 (33) 1983 (34) 1984 (35) 1986 (37) 1987 (38) 1988 (39) |
11월 4일 전남 여천군 남면 연도리에서 2남 4녀중 장남으로 출생 3세때부터 몇 년 동안 구루병을 앓아 후에 '척추만곡'이라는 불구가 됨 원광대 사범대 미술교육과(현 미술학부 회화과)입학 제6회 구상전 공모전에서 <그날의 나는>으로 동상 수상 제7회 구상전 공모전에서 <자리지 않는 나무>로 은상, <통학길>로 입선 전북미술전람회에서 <실향>으로 특선 한국창작미술협회 공모전(국립현대미술관) 입선 전주 '예수병원'에 폐결핵으로 입원 한국창작미술협회 공모전(국립현대미술관) 입선 원광대 미술학부 회화과 졸업 제 8회, 제 9회 구상전 공모전 입선 서울에서 첫 개인전 <손상기전>(동덕미술관) 개최 한국현대미술대상대전에서 <공작도시-나들이>로 동상 중앙미술대전(중앙일보)에서 <공작도시 - 81A)로 입선 제10회 구상전 공모전 입선 한국미술대전에 <공작도시-신음하는 도심>으로 입선하여 지방순회전 선정(대구) 제 11회 구상전 공모전 특선(은상, 동상에 이어 특선하여 회원에 추천됨) <손상기전>(동덕미술관), 초대개인전(여수 한길화랑) 미술평론가가 선정한 '문제작가'에 선정 초대 개인전 <손상기전>(샘터화랑) <'83문제작가>(서울미술회관), <작업실의 작가 16인> 초대전(조선화랑), 한국미술협회전(국립현대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주최 <해방 40년 민족사 초대전>, 구상전 회원전(L.A)등에 출품 감기증세로 진찰 중 폐결핵 후유증 발견 초대개인전 <손상기전)(샘터화랑), 평화랑 개관기념 초대전, <'85정예작가 초대전>(동덕미술관), <30대기수>(그림 마당 민, 록 화랑), 미술세계 기획 <'86 형상의 흐름>(경인미술관), 그랑빨레 비평구상협의회 초대전(파리), 제40회 구상전 소품전(표화랑), 주일한국대사관 한국문화원 7주년 기념 구상전 초대전(도쿄) 화랑미술제(샘터화랑), 초대개인전(호암갤러리- 마지막 개인전) 여름방학을 맞아 고향 풍경전 준비를 위해 만성리, 방죽포, 한산사, 오동도 등으로 스케치 여행을 다니던 중 무리한 일정으로 병원에 입원 2월 11일 서울고려병원에서 만 39세의 나이로 부인과 두 딸을 남겨둔 채 폐울혈성 심부전증으로 요절 경기 파주군 광탄면 용미리 시립묘지에 안장 |
<< 사후 현황 >>
1989 1990 1994 1998 2000 2001 2002 2004 2006 2007 2008 2011 2013 | <요절한 문제작가, 그 천재성을 확인> 화집 발간 기념 유작전 (샘터화랑, 현대화랑) <누드와 인간전>(샘터화랑), <예술혼을 사르다 간 사람들>(이석우 지음, 가타아트)에 소개 <요절작가 오윤, 손상기전>(샘터화랑) 작고 10주기 기념전(샘터화랑) 및 화집 <손상기의 글과 그림 - 자라지 않는 나무> (샘터아트북) 발간 여수 MBC-TV <시대와 인물 0 화가 손상기> 다큐멘터리 방영(오병종 연출, 광주, 목포, 제주, 여수 MBC 공동방영) <화가 손상기 평전 - 39까지 칠한 사랑과 절망의 빛깔>(박래부 지음, 중앙M&B 발행) 발간 <손상기 13주기 기념전 - 요절한 작가, 그 천재성을 확인>(예술의 전당 미술관, SBS 주최) 가나아트센터 개관 3주년 기념전 (요절과 숙명의 작가) <요절 - 왜 죽음은 그들을 유혹 했을까>(조용훈 지음, 효형출판사)에 소개 손상기 16주기 기념전 <낙타, 사막을 건너다. 불굴의 의지, 찬란한 예술 - 국민화가 손상기>(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 SBS주최) 손상기기념사업회 결성 손상기 19주기 기념 심포지움(손상기기념사업회 주최, 전남대 여수캠퍼스) 손상기 19주기 기념전(손상기 기념사업회 주최, 여수 진남문예회관) 손상기 작고 20주기 기념전(국립현대미술관) <손상기전 - 시들지 않는 꽃)(손상기기념사업회 주최, 여수 진남문예회관) 고 손상기 화백 학(세미나(한국미술평론가협회 주최, 여수 진남문예회관) <손상기의 삶과 예술 - 빛나는 별을 보아야 한다>(서성록 외 4인 지음, 사문난적) 발간 <손상기 25주기 기념전(손상기기념사업회 주최, 여수 GS칼텍스 예울마루) |
발췌 (<가지 않은 길> 여수를 사랑한 3인(김홍식, 배동신, 손상기)의 화가들 전-손상기기념사업회 주최)
<<< 자작시 <자라지 않는 나무여> 중에서 >>>
사라진 자리에도
그림자로 서 있는
바랜 빛이 있지만
폐품된 이야기를 지우며 간다.
어두 망막이 쫓는
형태도 없이
달아나는 저 수천의 표정들
저 금빛으로 나부끼는 손길을 잊어
단내음 다시 씹어 넘겨도
꺽꺽 울음으로 나오는
빈 화폭에 떨어져 누운
군청의 고함을 들어야 한다.
피가 엉긴 말의 끝
허무의 늪에 꽂힌 뼈
살 속에 점점이 낀 들꽃의 비명이
아직 만나지 않은 적막을 듣고 있다.
건널목 사이에서
혈관 끝에 빛나는 신호등
빛 꺼지고 빛 깨어 다스리는 소리
그대는 타오르라, 타오르라
빛나는 별을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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